1. 서론: 역사적·사회적 개연성을 뛰어넘은 영적 마비의 비극
구약성경 사무엘하 11장에 기록된 다윗과 밧세바의 사건은 단순히 개인의 사적인 일탈이나 순간적인 정욕에 이끌린 불륜 사건으로 치부할 수 없는 복합적인 구조적 성격을 지닙니다. 이 사건의 배경을 고대 근동의 정치 지형, 유대 사회의 가문 구조, 군사적 비상 체제, 그리고 당시의 주거·위생 문화라는 다각도의 시각에서 입체적으로 재구성해 보면, 이 일은 ‘사회적·정치적·문화적으로 도저히 일어날 수 없었던 사건’에 가깝습니다.
밧세바라는 인물은 사회적 자원과 강력한 정치적 울타리가 전혀 없는 무명(無名)의 여인이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당대 이스라엘 왕국의 최고 통치 엘리트 집단이자 국정의 핵심 축을 담당하던 아히도벨 가문의 직계 혈통이었습니다.
- 친할아버지: 다윗의 최고 정치 책사이자 국정 모사였던 아히도벨
- 아버지: 다윗의 정예 최측근 용사 집단인 ’30인 용사’의 핵심 인물 엘리암
- 첫 남편: 다윗왕에 대한 충성심과 무용으로 이름 높은 최전선 장수 우리아
이처럼 이스라엘 왕국의 신정 통치 체제와 군사적 기틀을 떠받치던 3대 핵심 인물이 모두 그녀의 직계 친족이자 보호자였습니다.
또한 사건이 벌어진 시점은 암몬 족속의 수도 라바(Rabbah)를 둘러싸고 국가의 사운을 건 총력전이 펼쳐지던 전시(戰時) 비상상황이었습니다. 나라의 사정상 가문의 수장들과 정예 군사들이 모두 최전선에 나가 있던 때였습니다.
정치적 결례, 가문 간의 충돌 위험, 국가 비상 체제의 엄중함, 그리고 유대 사회의 엄격한 율법적 정조 관념 등 그 어떤 요소를 적용하더라도 이 사건은 집권자에 의해 시도되기조차 어려운 극단적인 리스크를 안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왕국의 정점에 선 순간, 자신의 영적 파수대를 내려놓고 심각한 영적 타락과 오만에 빠져들었습니다. 본 논고에서는 밧세바 사건의 사회적·정치적·문화적 불가능성을 세밀하게 입증하고, 이 모든 걸림돌을 무너뜨린 다윗의 영적 타락의 본질과 그 후폭풍을 깊이 있게 조명하고자 합니다.
2. 밧세바의 가문적 배경과 정치적 위상
2.1 아히도벨, 엘리암, 우리아: 다윗 왕국의 3대 핵심 엘리트 축
밧세바가 속한 가문은 당시 이스라엘 정치·군사 지형에서 절대적인 영향을 행사하던 유다 지파 최고 명문가였습니다.
[길로 출신의 아히도벨]
(다윗의 최고 정치 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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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인 용사 엘리암]
(다윗의 정예 군사 측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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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밧세바 (Bathshe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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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남편: 우리아] [두 번째 남편: 다윗왕]
(30인 용사 / 최전선 장수) (이스라엘의 통치자)
① 할아버지 아히도벨(Ahithophel)의 위상
아히도벨은 유다 지파의 산지 도시 ‘길로(Giloh)’ 출신으로, 다윗 왕조의 신정 정치를 기획하고 실행한 핵심 지략가였습니다. 성경은 그의 지혜를 가리켜 “사람이 하나님께 물어서 얻은 말씀과 같다”(사무엘하 16:23)고 평가할 정도로 그의 정치적·전략적 무게감은 왕국 내에서 독보적이었습니다.
② 아버지 엘리암(Eliam)의 지위
사무엘하 11장 3절에 밧세바는 “엘리암의 딸”로 명시됩니다. 엘리암은 사무엘하 23장 34절에 기록된 ‘다윗의 30인 용사(David’s Mighty Warriors)’ 중 한 명입니다. 이들은 다윗이 사울의 추적을 피해 사막과 동굴을 전전하던 시절부터 생사고락을 함께한 개국공신이자 최정예 군사 엘리트 집단이었습니다.
③ 남편 우리아(Uriah the Hittite)의 인품과 역할
우리아 역시 다윗의 ’30인 용사’ 명단(사무엘하 23:39)에 이름을 올린 장수였습니다. 비록 이방 헷(히타이트) 족속 출신이었으나, 여호와 신앙으로 귀화하여 다윗에게 절대적인 충성을 바친 핵심 장교였습니다.
2.2 귀족 가문의 사회적 네트워크와 견제 장치
이러한 삼중의 혈연·군사적 결합은 밧세바를 왕국 내에서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막강한 ‘정치적 성채’ 안에 두는 효과를 가졌습니다.
상식적인 정치 지형 안에서 왕이 자신의 최고 책사의 손녀이자, 정예 용사의 딸이며, 최전선 장수의 아내인 여성을 사적인 정욕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정권 전체의 정치적 기반을 스스로 뒤흔드는 행위였습니다. 다윗의 왕권은 군부 공신들과 지파 영수들의 지지에 기반하고 있었기에, 이러한 행동은 정권 내부의 심각한 균열과 반발을 초래할 수밖에 없는 폭거였습니다.
3. 전시(戰時) 비상 체제와 국가적 위기 상황
3.1 암몬과의 라바(Rabbah) 공성전의 군사적 맥락
사무엘하 11장 1절은 사건의 시점과 군사적 상황을 명확하게 규정합니다.
“해가 돌아와서 왕들이 출전할 때가 되매 다윗이 요압과 그에게 있는 그의 신하들과 온 이스라엘 군대를 보내니 그들이 암몬 자손을 멸하고 라바를 에워쌌고 다윗은 예루살렘에 그대로 있더라” (사무엘하 11:1)
당시 이스라엘은 암몬의 수도 라바를 봉쇄하고 공성전을 벌이는 중이었습니다. 이는 요단 동편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대규모 총력전이었으며, 왕국의 사운과 정예 병력이 모두 전선에 투입된 상태였습니다.
[예루살렘 왕궁 (다윗의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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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 80km 거리에 위치한 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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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몬의 수도 라바 (요압, 우리아, 엘리암의 위치)]
3.2 총사령관의 공백과 비상시국의 통제력
전시 상황에서는 최고 통치자 및 군사 지휘관들의 일거수일투족이 엄격하게 관리되며, 모든 국가적 자원이 전방을 향해 집중됩니다.
- 가문 보호자들의 부재: 밧세바를 보호해야 할 아버지 엘리암과 남편 우리아, 그리고 군사적 지휘권을 가진 정예 군사들이 모두 전선에 나가 있었습니다.
- 왕궁 내부의 견제 부재: 왕국 내의 주요 인사들과 행정력 역시 전방 지원 및 비상 체제 운영에 집중되어 있어, 왕궁 내부에서 다윗의 개인적 행동을 견제할 시스템이 일시적으로 이완되어 있었습니다.
- 전시 권력의 집중: 전시 상황에서 왕권은 생사여탈권을 지닌 직속 지휘권으로 강화됩니다. 왕이 보낸 전령의 명령은 전시 군사 명령에 준하는 무거운 압박으로 작용했습니다.
4. 다윗 시대 유대 사회의 주거, 위생 및 정결 문화
4.1 ‘4실 가옥(Four-Room House)’ 구조와 정원의 사생활
성경고고학 발굴에 따르면, 다윗 시대(철기 시대 IIA) 이스라엘의 전형적인 주거 형태는 ‘4실 가옥(Four-Room House)’이었습니다.
+---------------------------------------+ | 뒷방 (창고/침실) | +---------------+---------------+-------+ | 측실 (방) | 중앙 뜰 (중정)| 측실(방) | | | (Courtyard) | | | | (하늘로 개방) | | +---------------+---------------+-------+ | 입구 | +---------------------------------------+
- 중앙 뜰(Courtyard)의 구조: 집 중앙에는 지붕이 개방된 뜰이 존재했으며, 가정 내의 대다수 일상생활(요리, 세탁, 정결 씻음)이 이 뜰이나 높게 둘러싸인 담장 내부에서 이루어졌습니다.
- 실내 배관의 부재: 현대와 같은 실내 전용 욕실 시설이 없었으므로, 목욕은 담장으로 둘러싸여 외부 시선이 차단된 집 안 뜰이나 평평한 지붕 공간에서 항아리에 물을 받아 행해졌습니다.
4.2 다윗성(City of David)의 지형적 특성과 왕궁의 높이
사무엘하 11장 2절은 “저녁 때에 다윗이 그의 침상에서 일어나 왕궁 옥상에서 거닐다가”라고 기록합니다.
[높은 지대] 왕궁 옥상 (다윗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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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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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지대] 귀족 가옥의 중앙 뜰 (밧세바의 목욕 장소)
예루살렘 다윗성은 북쪽에서 남쪽으로 경사진 능선 위에 구축되어 있었습니다. 왕궁은 성의 가장 높은 북쪽 상단부에 위치하였고, 귀족들의 가옥은 그 아래쪽 경사면에 배치되었습니다.
밧세바는 자신의 집 내부 담장 안에서 정당하게 사생활을 보호받으며 씻고 있었으나, 왕궁 옥상이라는 독특한 높은 지형적 위치에서는 아래쪽 가옥의 뜰 내부가 내려다보이는 지형적 구조가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4.3 레위기 정결법(Ritual Purification)과 저녁 시간의 의미
사무엘하 11장 4절은 밧세바의 목욕 목적을 분명히 밝힙니다: “밧세바가 그 부정함을 깨끗하게 하였으므로”
이는 밧세바가 사적인 은밀한 유혹을 위해 씻은 것이 아니라, 레위기 15장 19~24절에 규정된 월경 후 정결 의식(Ritual Purification)을 엄격히 준수하고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 율법적 정결 의식: 여성이 월경을 마친 후 정한 날짜에 몸을 씻어 종교적·위생적 정결을 회복하는 거룩한 의무였습니다.
- 저녁 시간의 의미: 유대인들에게 하루의 시작은 저녁(해 질 녘)이었습니다. 정결 의식을 마치고 새로운 하루를 맞이하는 거룩한 율법 준수의 순간이었습니다.
5. 유대 사회의 엄격한 정조 관념과 여성의 사회적 한계
5.1 신명기 율법의 엄격한 성 윤리
고대 이스라엘 사회는 성적 순결과 가정의 거룩함을 유지하기 위해 엄격한 율법적 법의식을 가졌습니다.
- 간통에 대한 처벌: 신명기 22장 22절에 따르면, 남의 아내와 간통한 남녀는 둘 다 돌로 쳐 죽이는 사형에 처하도록 규정되어 있었습니다.
- 명예와 수치(Honor and Shame): 귀족 가문의 여성에게 순결과 정조는 가문 전체의 명예와 직결되는 존엄한 가치였습니다.
5.2 권력형 성범죄와 항거 불능의 상태
유대 사회의 엄격한 정조 관념에도 불구하고, 밧세바가 다윗의 전령을 따라 왕궁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던 상황은 절대 권력에 의한 구조적 항거 불능으로 해석됩니다.
- 전시 비상권력의 압박: 전선에 남편과 아버지를 보낸 상황에서, 군사 통솔권을 가진 왕이 보낸 전령(군사)들의 소환을 거부하는 것은 전시 항명 및 역모로 몰릴 수 있는 치명적 위험이었습니다.
- 정보와 소통의 차단: 밧세바는 왕궁에 들어가기 전 다윗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할 수 없었으며, 왕의 부름에 응하는 것 외에 달리 선택할 수 있는 사회적·물리적 대안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6. 정치적·사회적 불가능성을 무너뜨린 다윗의 영적 타락
6.1 영적 나태함과 파수대의 무너짐
다윗은 사울의 추적을 받던 시절과 광야의 시련 속에서는 매 순간 하나님께 물으며 영적 파수대를 지켰습니다. 그러나 전쟁의 승리가 이어지고 영토가 확장되자, 고난의 시기에 유지했던 경성함(Vigilance)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광야 시절] 시련과 고난 ──> 하나님께 물음 ──> 영적 경성함 유지 [왕정 안착기] 승리와 풍요 ──> 옥상을 거닒 ──> 영적 나태와 안일 ──> 권력형 범죄
사무엘하 11장 1절의 “다윗은 예루살렘에 그대로 있더라”라는 구절은 총사령관으로서 있어야 할 전선(Battlefield)을 이탈하여 영적 사명에서 벗어난 다윗의 상태를 암시합니다.
6.2 정욕의 단계적 심화와 율법의 무시
다윗의 범죄는 단순한 한순간의 실수가 아니라, 영적 시선이 마비되면서 단계적으로 심화된 과정이었습니다.
1단계: 옥상에서 시선이 머묾 (Look)
2단계: 사람을 보내 인적 사항을 알아봄 (Inquire)
3단계: 명문가 배경과 우리아의 아내임을 확인하고도 전령을 보냄 (Send)
4단계: 왕궁으로 불러들여 동침함 (Commit)
다윗은 신하를 통해 그녀가 “엘리암의 딸이요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라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이 보고는 다윗에게 영적·정치적 경고등이었습니다. 상대가 최고 공신의 가문이며 충직한 장수의 아내라는 사실을 확인했음에도, 다윗의 마비된 영성은 이 모든 정치적·도덕적 경계선을 짓밟고 범죄로 직진하게 만들었습니다.
7. 범죄의 은폐 공작과 은밀한 살인: 요압과의 정치적 결탁
7.1 우리아를 향한 치밀한 위장 공작
밧세바가 임신 사실을 알리자, 다윗은 자신의 죄를 율법과 사회적 시선으로부터 은폐하기 위해 단계적인 위장 공작을 펼쳤습니다.
- 1차 은폐 시도: 전방에 있던 우리아를 예루살렘으로 불러내 휴가를 주고, 집으로 내려가 아내와 동침하도록 유도하여 아이의 아버지를 우리아로 위장하려 했습니다.
- 우리아의 충직함: 우리아는 “언약궤와 이스라엘과 유다가 야영 중에 있고 내 주 요압과 내 주의 종들이 들에 야영하고 있거늘 내가 어찌 내 집으로 가서 먹고 마시고 내 아내와 자리잇악까” (사무엘하 11:11)라며 집으로 내려가지 않고 왕궁 문에서 숙식했습니다.
- 2차 은폐 시도: 다윗은 우리아에게 술을 먹여 취하게 한 후 집으로 보내려 했으나, 우리아는 끝내 집으로 내려가지 않았습니다.
7.2 밀지와 청부 살인: 요압 장군과의 결탁
자신의 위장 공작이 충직한 장수의 의로움 앞에 무력화되자, 다윗은 왕권을 이용한 치명적인 살인 교사를 감행합니다.
[다윗왕] ──(살인 밀지 전달)──> [우리아 (본인의 죽음표를 들고 감)] ──> [요압 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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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바 성벽 바짝 공격 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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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아 및 전우들 전사]
- 비열한 수단: 다윗은 우리아의 손에 자신을 죽이도록 지시하는 친필 밀지를 들려 전선의 요압에게 보냈습니다.
- 요압의 정치적 셈법: 요압은 군사령관으로서 부당한 살인 명령을 거부하지 않고, 오히려 성벽 가깝게 군사를 바짝 붙여 공격하는 무리한 작전을 펼쳐 우리아를 적의 화살에 맞아 죽게 만들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아뿐만 아니라 다윗의 다른 용사들도 함께 전사했습니다.
- 권력의 약점 잡기: 요압은 다윗의 치명적인 도덕적 약점(범죄 밀지)을 손에 쥠으로써, 향후 자신의 군사적 지위를 영구화하고 다윗을 정치적으로 압박할 수 있는 결정적인 약점을 확보했습니다.
8. 영적 타락이 불러온 치명적인 역사적 후폭풍
다윗의 영적 타락과 범죄는 개인의 죄로 끝나지 않고, 다윗 가문과 이스라엘 왕국 전체를 무너뜨리는 역사적 비극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8.1 나단 선지자의 책망과 하나님의 심판 선언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나단을 보내 부유한 자가 가난한 자의 하나뿐인 어린 양을 빼앗은 비유를 통해 다윗의 죄를 정확히 지적하셨습니다.
“너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나 보기에 악을 행하였느냐 너가 칼로 헷 사람 우리아를 치되 암몬 자손의 칼로 죽이고 그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도다 이제 네가 나를 업신여기고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은즉 칼이 네 집에서 영원히 떠나지 아니하리라” (사무엘하 12:9-10)
8.2 아히도벨의 배신과 압살롬의 반란
이 범죄가 가져온 가장 치명적인 정치적 후폭풍은 밧세바의 친할아버지인 아히도벨의 배신이었습니다.
[다윗의 밧세바 범죄 및 우리아 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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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히도벨 가문의 깊은 분노와 복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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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살롬의 반란 시 아히도벨의 주도적 합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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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을 향한 철저한 정치적·군사적 보복 시도]
훗날 다윗의 아들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다윗의 최고 책사였던 아히도벨은 망설임 없이 압살롬의 편에 섰습니다. 아히도벨이 압살롬에게 제안한 첫 번째 전략은 “온 이스라엘이 보는 앞에서 다윗의 후궁들과 동침하라”(사무엘하 16:21)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다윗이 자신의 손녀 밧세바를 범한 죄에 대한 철저한 수치적 보복이자 정치적 형벌이었습니다.
또한 아히도벨은 정예 병력 1만 2천 명을 직접 이끌고 밤에 도망치는 다윗을 추격하여 다윗왕 한 사람만을 신속하게 격살하겠다는 전격전 전략을 제안했습니다(사무엘하 17:1-3). 이는 다윗 가문에 의해 집안의 명예와 손녀사위를 잃은 아히도벨의 깊은 원한이 정치적 반란의 동력으로 작용했음을 보여줍니다.
9. 종합 비교 분석: 사건의 불가능성과 영적 타락의 대립
아래 표는 밧세바 사건을 둘러싼 사회적·정치적·문화적 장벽과, 이를 무너뜨린 다윗의 영적 타락의 요소들을 대비하여 나타냅니다.
| 분석 영역 | 사회적·역사적 장벽 (이루어질 수 없는 이유) | 다윗의 영적 타락 및 권력 폭거 (작용한 원인) |
|---|---|---|
| 가문 및 정치적 배경 | – 아히도벨(최고 책사)의 친손녀 – 엘리암(30인 용사)의 딸 – 우리아(정예 장수)의 아내 → 정권의 뿌리를 흔드는 치명적 정치 리스크 |
– 영적 오만으로 인한 정치적 판단력 마비 – “나는 왕이므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권력 착각 – 공신 가문에 대한 예의와 율법의 경계 무시 |
| 군사 및 시기적 상황 | – 암몬 라바 공성전 진행 중(전시 비상 체제) – 핵심 가문 보호자들이 모두 최전선 출전 – 국가적 자원이 전쟁에 집중된 시기 |
– 총사령관으로서의 사명 이탈(“예루살렘에 그대로 있더라”) – 영적 나태함과 왕궁 옥상에서의 한가한 거닒 – 전시 비상 직속 지휘권을 사적 욕망 추구에 오용 |
| 주거 및 문화적 환경 | – 4실 가옥의 담장 안 중정(뜰) 구조 – 사생활이 보호받는 사적 공간에서의 정결 세척 – 레위기 율법에 따른 월경 후 정결 의식 준수 |
– 왕궁 옥상이라는 지형적 위치의 남용 – 사적 공간을 시각적으로 침해한 후 시선 고정 – 율법 준수의 거룩한 순간을 범죄의 기회로 왜곡 |
| 사회적 법의식 및 정조 | – 간통 시 남녀 모두 돌로 쳐 죽이는 엄격한 율법 – 귀족 가문 여성의 명예와 순결 중시 |
– 왕권의 절대성을 이용해 전령을 보내 강제 소환 – 상대 여성의 사회적 항거 불능 상태 악용 – 율법의 집행자여야 할 왕이 율법을 정면으로 파괴 |
| 범죄 후속 조치 | – 사회적 신망과 하나님 앞에서의 도덕성 요구 – 30인 용사 간의 신의 유지 |
– 임신 사실 은폐를 위한 구차한 위장 공작 – 충직한 우리아의 의로움을 악용 – 요압과 결탁하여 밀지를 통한 비열한 청부 살해 |
10. 결론: 현대적 시사점과 신학적 교훈
다윗과 밧세바의 사건은 유대 최고 명문가의 울타리, 국가적 전시 비상 체제, 엄격한 율법적 정조 관념, 그리고 사생활이 보호되는 주거 구조 등 모든 역사적·사회적·문화적 걸림돌에도 불구하고 집권자의 영적 마비와 권력의 오만이 어디까지 폭주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역사적 사건입니다.
💡 핵심 요약 및 신학적 교훈
- 권력형 범죄의 본질: 이 사건은 단순한 사적 정욕의 산물이 아니라, 견제받지 않는 절대 권력이 신앙적 경성함을 잃었을 때 발생하는 전형적인 권력형 성범죄이자 구조적 폭거였습니다.
- 영적 파수대의 중요성: 과거의 신앙적 업적이나 지도자로서의 풍부한 경험도 현재의 영적 경성함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사명의 자리를 이탈할 때 지도자는 언제든 치명적인 범죄의 주체가 될 수 있습니다.
- 죄의 연쇄성과 공의로운 심판: 죄는 절대로 은폐되지 않으며, 비열한 수단을 동원할수록 더 큰 역사적 비극과 가문 내의 반란(아히도벨의 배신, 압살롬의 난)으로 이어집니다.
결론적으로 성경이 이 비극적인 사건을 숨기지 않고 상세히 기록한 이유는, 하나님 앞에서 그 어떤 인간적 지위나 과거의 경건함도 영적 나태와 오만을 정당화할 수 없으며, 모든 인간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경성함 속에서만 바로 설 수 있음을 역사 앞에 엄중히 경고하기 위함입니다.
💡 추천 관련 자료 및 출처
[참고 문헌 및 학술 출처]
- 성경 본문: 구약성경 사무엘하 11장~17장, 사무엘하 23장 (개정개역 및 히브리어 BHS 본문)
- 고고학 및 주거 구조: Avraham Negev & Shimon Gibson, Archaeological Encyclopedia of the Holy Land, “Four-Room House and City of David Excavations”.
- 신학 및 구약 주석: Gordon J. Wenham, Word Biblical Commentary: 2 Samuel; John Bright, A History of Israel.
- 고대 근동 법률 및 사회사: Roland de Vaux, Ancient Israel: Its Life and Institutions.
[추천 외부 동영상 및 강해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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